천도교는 유교, 도교, 불교, 샤머니즘, 심지어는 천주교의 요소를 결합한 것을 종교적인 주제나 배음으로 하는 한국 민족주의 또는 애국 운동으로 시작된 ‘하늘 길의 종교”를 말합니다. 이는 이의 동학 또는 “동부 학습”에서 처음 의미하는대로 서양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의 성공은 이 철학적 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해 사회 개혁의 메시지와 함께 종교의 굴레를 사용한 설립자 최제우에 의해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부패 뿐만 아니라 최제우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외국인의 손에만 놓아졌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처럼 보이는 서양 종교와 이의 제국주의적 힘으로인한 동아시아의 대외 침략에 대해 반대하는데 있어 이의 진행을 가속하고 추진하는데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정의와 평화의 번영이 가득한 인도주의적 시대를 가져오는 더 나은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최제우는 특히 영국 프랑스 군에 의한 베이징의 중국 패배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위협을 봄에 따라 한국을 서양과 같이 강하게 만드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초에는 최제우가 이를 실질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른채 오직 이 영감만을 가지고 정처없이 달린것처럼 보입니다. 놀랍게도 ‘당신의 마음에있는 천국의 길’에 대한 그의 개념은 단순한 또다른 영적 운동으로부터 농민의 무장 혁명을 이끌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 낙원이 인권과 사회 자본의 새로운 시대에 도래에 있어 전쟁 수행을 하는 종말론적 시대의 지옥과 같은 유혈사태를 통해 올 것과 같이 보였지만, 이의 군사 노력의 실패로 인해 최제우와 최시형 모두 순교하며, 운동은 지하로 묻히게 되었습니다.
폭력의 무장 충돌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복원하고 보존하고자했던 이 이상주의는 하늘을 섬기는것처럼 모든 사람을 섬기거나, 사람을 신처럼 여기며, 다른 사람을 최상의 관심, 존중, 존엄성과 평등한 방향으로 취급하나, 자신 나라의 일부뿐만 아니라 도덕적 또는 윤리적 원칙을 파괴함으로 인해 반직관적으로 보입니다.
최제우의 메시지의 또 다른 측면은 외국인과 외부인을 향한 그의 반지향성을 가지고 그의 동료들만을 위한 것으로 세계적인 관심과는 반대로 한국 사회의 지역화 지리만을 대상으로 하여 편견의 우려를 제시하는듯 보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이 이 유토피아 시대의 주요 수혜자이긴 했지만 한국은 이 거대한 세계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특히 문명의 특권 사회로서, 마찬가지로 도덕적 질서를 달성하기 위해 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늘과 땅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큰 세계 사회에서 이 한나라만을 위한 관심을 가지실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게 합니다. 아마도 그는 한국이 전세계 개발을 위한 촉매로써 축소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것 같으나, 그 자신이 멸시한 것들은 서양에 대해 그가 동양적인 방법을 부과하려 했던 시도와 다른 점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몇몇 부분에서 이 운동은 일부 필요로 하는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초래하는 미래의 개혁을 지원하는데 있어 보다 독립적이도록 할 수 있도록 선도함으로써 한국인의 삶에 있어 유용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에는 이의 계몽 리더십을 통해 제안했던 수준의 구체화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개념은 차후 북한이 빈곤해져 국민이 학대받는 그 잔인한 감옥이나 노동 수용수를 가지는 독재의 만행하에 민족에 대한 학대와 억압을 하는데 있어 한국 노동당을 통해 이용됩니다. 오늘날, 천도교는 북한 사회 내에서 구원의 혜택을 가져오는 변화의 힘을 보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천도교 종우회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것은 조선 노동당과 범외로 소외되어 독립적 종교로서의 모든 활동이 허용되지 않으며 이가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한국 전쟁중에 남한으로 도망을 한 이유입니다. 어쨌든 이는 종교 자유와 다당제 민주주의가 주최됨을 보이려는 이미지으로서 천도교 종우회 지도부는 북한 정부에 의해 임명된 꼭둑각시입니다.
다음 지적할 사항은 아마도 최제우가 결코 완치를 하지 못한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임명되었으나 결코 완치를 하지 못하였으며, 그로인해 천국의 하나님과 같은 최고 신성인 한울님에 대한 개인 영접을 통한 신비한 부적, 영주 또는 영적 기호를 받는것과 같은 그의 영적 경험에 대한 의심을 들게합니다. 이것에 대해 제가 회의적인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이타적 동기에 근거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기독교의 성공에 대한 분노와 반대로부터 설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이상하게도 그는 신과 성경에 대한 개념과 이의 관행과 단어 일부를 융화하는 시도와 채택 그리고 기도, 찬송, 성경 읽기 및 설교가 있는 주일 예배를 가짐으로서 혁신적으로 천주교를 강화합니다. 따라서 이는 적의 방법에 동의하고 이를 수용하여 손실된 한국의 영혼을 살리려는 필사적인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가 기독교가 정말 거짓 종교라고 생각하고 한국을 정화하고 싶어했다면 왜 그는 유교와 같은 것을 채택하고 이러한 관행에 스스로 거리를 두고 거부하지 않았을까요? 결국에는 최고의 신성 통치자와 치유에 있어서의 그의 카톨릭 신앙과 관련하여 최제우가 순교를 하게되어 비극적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이 운동을 요약하자면, 개인 숭배에 더 가까우며, 큰 탄력을 받았고, 몇몇 성공을 이루었지만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거의 생존하기 어려움으로 인해 사그라들었습니다.
제가 당면한 또 다른 문제는 원래 최제우에 의해 동부 학습의 계몽 원칙 달성을 위해 설립된 이 운동이 세번째 후계자인 손병희가 이의 가르침을 재구성 이 운동을 재 조직함으로서 50년 미만의 기간에 이의 적용을 변경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으로 망명했던 손병희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며 동학 회원들이 그들의 상고머리를 자르고 현대적인 의복을 갖추는 것 뿐만 아니라 비폭력 시위에 참여하는 등으로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가진 진보 사회로서의 진보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천도교의 새로운 이름을 채택함으로서 운동을 더 근대화시키고 종교적 정체성에 중점을 두어 이의 정치적, 군사적 의제를 제거하는 작전과 손병희의 생존에 의해 고무되어 그룹의 수용 및 한국정부 뿐만 아니라 차후 한국을 지배하게 되는 일본에게도 평화를 가져오도록 합니다. 어쨌든, 저는 이 그룹의 리더십이 설립자의 원칙 유지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소 계몽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 운동은 불교 의식과 약전을 추가한 고종황제의 영향하에 또다른 개정을 실행했으며 카멜레온처럼 이 운동은 특히 불교 관행을 절대 채택하거나 수용하지 않았던 최제우의 원래 깨달음에 다른 관행의 섞음을 통해 이의 문화적 주변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이의 색을 변화시켰습니다.
이의 신앙 체계는, 그들은 하레 크리슈나교도처럼 21 음절의 주문을 하며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조화로이 하는 노래 또는 공식화 된 만트라기도를 암송의 수박을 통해 신비롭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켜 깨달음을 달성하도록 “우주의 창조적 힘아 내 안에 풍부하게 존재하라.하늘은 저와 함께 하며, 모든 창조가 수행됩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않으며, 모든 것이 알려질 것입니다” 라는 신비한 주문을 합니다.
이 말은 곧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라는 기본 원칙과 이는 자신의 몸과 정신의 일치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하나님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개인에의해 실현 될 수있음을 포함합니다. 그의 메시지 일부가 고무적이긴 했지만 치명적으로 위험하고 잘못된 히틀러가 당신이 뭔가 큰 목소리로 충분히 길게 말한다면 그 사람들이 당신을 믿을것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주문으로서 단어를 주절거리는 것은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저는 아무리 이가 존경스럽게 보이거나 표현될지라도 우리가 하는 말과 신념이 반드시 진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 한국 이데올로기에 나치 독일에 대한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인류의 말, 가치 및 개시에 독립적으로 포함될수 있고 신념 체계내에 진실의 요소가 포함될수는 있지만 이것이 모든 면에서 필수 또는 궁극적으로 진실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당신이 당신의 믿음에 신실할 지라도 여전히 잘못할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의 또 다른 논란은 모든 종류의 천국과 지옥과 내세에 대한 부정이며 이는 완벽하게 좋은 주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이 삶의 결과를 피할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은 죽음의 경계를 넘어 정의를 나타내어 충분한 보상 또는 개인의 선고를 요구하는 이유에 반대 합니다. 어쨌든 저는 이전에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했던 것에 대해 쓴적이 있으며 심지어는 임종 경험 또는 변환을 목격한 전 무신론자 의사의 증언들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증언의 일부를 포함하는 비디오 링크를 여기에 포함시킵니다.
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vQ8TEGMj-jc
최근 지상 천국의 전체 이상 또는 개념은 대부분의 생명체가 구하고있는 것이며 언젠가는 올것 있니다만 그들의 소위 신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 또는 제한된 용량에서 그의 이미지를 함유함에서의 인간의 기관을 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유혈 사태로 가득했던 20 세기에 의해 입증되듯 인류의 특성상 이러한 큰 종류의 진화를 한 적이 없으므로 세속적 혹은 종교 경로의 인간 동기부여를 통해서이든지 간에, 인류는 이 장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특정 잠재력 획득에 있어서 현대 기술의 개발과 고도화를 통해 성장을 계속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인류의 적성이 자유 의지 생명체로서 완벽한 도덕적 수준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위대하던지 간에 그들은 모든 문제에 있어 계속적으로 정복되어 패할것이며, 아무리 이상적으로 보여지고, 생각될지라도 인류가 본질 및 잠재적으로 신성이라고 믿는 수를 가지는 하늘의 길을 어떤 방법으로 따르게 하는 것은 인간의 기능에 대한 과대 평가입니다.
본질적으로 동양에서 유래함에도 불구하고, 최제우가 서양 종교로서 기독교를 반대했지만, 이는 영적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병원과 고아원 등의 기관등에서 개발된 것처럼 글로벌 비율의 실제적인 인도주의적 작품으로서의 확산으로 이끌어짐으로부터 미덕과 도덕에 관해 노력하고 있었던 그의 본질을 포함한다. 실제로 그가 그의 이미지를 따라 신을 만들고 인간의 영광을 표시하는데 있어 하늘을 땅에 합치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현대판 바벨탑을 세우는 등으로 그 자신의 한국 이상주의 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것으로 보여집니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 묘사는 사람이나 국가의 의지를 통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시작되는 영원한 평화를 설립하신 주예수 그리스도의 사람과 사업에서 보여집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의 통치와 통치 아래 지상에서 정의의 질서가 회복되도록 많은 마음과 삶이 참여함에따라 세계를 조화시키는데 있어 동양과 서양 사이에 다리를 구축하여 장벽을 제거함으로서 사람들의 경박한 목표의 단점을 정복함을 입증하셨습니다.
끝으로 최제우의 출생 이름은 그가 나중에 “무지의 구세주”로 개정하는 “구하고 선포하는 이”가 됨을 언급하나 실제로 그들 자신이 구주를 필요로하는 단순한 인간들로서 그와 그의 조직에 대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당신 또한 당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할때 탐욕과 정욕의 물질적 욕망을 피하고 확고한 마음을 가지는데 있어 도덕적 미덕 또는 원칙의 개인적 재배를 통해 이러한 필요를 갖게 될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임무는 모든 결과에 죄의 속박에서 풀어주시는 것이었으며 그분은 위대한 교사로 영혼과 마음을 정화 하시는 생수의 근원이시며 진정한 하늘의 주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이 아닌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화해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의 구현을 통해 마음과 삶의 변화를 세계 인류에게 혁명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영적 원칙의 엄함을 통하지 않고 그의 구원의 선물로 그들에게 새로운 타고난 본직 또는 성품 좋은 거룩함과 의로움을 줌으로서 다른 이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결과를 불러왔으며 이는 저를 포함한 수백만명의 생명을 변화시켰으며, 우리의 간증에 대한 링크를 다음에 포함합니다. 제가 친구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이 그분을 주님 그리고 구주로 믿으며 알수 있는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시도록 요청하기 위해 기도와 명상의 시간에 본인의 마음을 열라는 것 뿐입니다. 결국 당신이 얻는것에 비교해서 잃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에 대한 나의 증언
www.cbn.com/700club/features/amazing/
예수님이 이르시되
마태복음: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F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Encyclopedia of Religion Second Edition, copyright 2005 Thomson Gale a part of The Thomson Corporation, Lindsay Jones Editor in Chief, Vol.3, pgs. 1647-1648, Yong-Choon Kim
Encyclopedia of Religion Second Edition, copyright 2005 Thomson Gale a part of The Thomson Corporation, Lindsay Jones Editor in Chief, Vol.8, pg. 5234, Francisca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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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s of the world: a comprehensive encyclopedia of beliefs and practices/ J. Gordon Melton, Martin Baumann, editors; Todd M. Johnson, World Religious Statistics; Donald Wiebe, Introduction-2nd ed., Copyright 2010 by ABC-CLIO, LLC. Reproduced with permission of ABC-CLIO, Santa Barbara, CA.